[뉴스트래블=편집국] 러시아 사하(야쿠티아) 공화국 동쪽 끝, 끝없이 이어지는 라르크트강 계곡 깊숙한 자리. 겨울이면 태양조차 수평선 위로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이 땅에, 지구에서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한 정주지가 있다. 오이먀콘(Oymyakon). 수은이 얼어붙어 온도계가 멈추는 곳, 1933년 관측된 영하 –67.7℃는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서 기록된 최저 기온으로 지금도 세계에 남아 있다. 이곳의 겨울은 단지 춥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생존 자체가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다른 행성에 가까운 공간이다.
온도가 멈춘 마을
오이먀콘의 겨울은 10월 말부터 시작된다. 기온이 영하 40℃ 아래로 떨어지는 데는 며칠도 걸리지 않는다. 12월과 1월의 평균 기온은 –45℃에서 –50℃, 그리고 최저는 –60℃ 아래로 내려간다. 이 지역은 북극해의 찬 공기가 사하 고원에 갇히며 빠져나가지 않는 ‘한랭 호(Cold Basin)’ 지형이다. 공기가 정체되면 마을 위로 안개가 낮게 깔리고, 숨을 쉬는 사람과 짐승의 입김이 하얀 층을 이루며 흩어진다. 그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기온이 너무 낮아 차를 밖에 세워두면 엔진오일이 어는 것은 물론, 금속 부품이 부서지기도 한다. 주민들은 시동을 끄지 않은 채 하루 종일 공회전을 시키거나, 따뜻한 창고에서 차를 보관한다. 때로는 바깥 온도가 너무 낮아 디젤이 굳어버려 연료 자체가 흐르지 않는다. 이곳에선 ‘정상적인 기계’라는 개념이 통하지 않는다. 단지 버텨낼 수 있는가, 그것만이 기준이 된다.
물도 마찬가지다. 수도관은 영구동토층 위에 묻을 수 없어, 학교와 병원 같은 공동 건물에는 얼지 않도록 장거리 급수차가 물을 공급한다. 강은 겨울 내내 얼어붙고 주민들은 얼음을 쪼개 물을 채운 뒤 실내에서 녹여 쓴다. 자연이 만들어낸 규칙은 단순하고 잔혹하다. ‘얼기 전에 행동하라.’
가장 혹독한 일상의 형태
오이먀콘에서의 삶은 극한을 견디는 실험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가진 무게가 훨씬 더 크다. 주민은 약 500~900명 사이로, 목축과 순록 사육, 소규모 교육·공공기관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도시에서 흔히 보이는 산업이나 서비스업은 이곳에는 없다. 겨울의 절반은 차량 이동이 제한되며, 도로는 얼음과 눈길이 번갈아 드러난다.
추위는 모든 행동의 속도를 늦춘다. 장갑을 벗는 순간 피부는 수 초 만에 통증을 느끼고, 금속을 맨손으로 잡으면 그대로 달라붙는다. 씻는 일조차 위험할 때가 있다. 젖은 머리로 잠시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머리카락이 바로 얼어버린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50℃ 아래에서도 학교에 간다. 현지 기준으로 –52℃ 이하에서만 휴교가 결정된다.
오이먀콘의 겨울은 항공편을 끊어놓는다. 마을로 향하는 비행기는 계절에 따라 불규칙하게 운항하며, 나머지는 수백 킬로미터를 눈길로 이동해야 한다. 의학적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구조대는 러시아 군용 헬기를 요청해야 한다. 생명이 유지되는 방식도, 위험이 찾아오는 속도도 다른 세계의 시간과 다르다.
‘추위’ 위에 세워진 문화와 기억
극한의 조건은 독특한 문화적 풍경을 만들었다. 겨울 축제에서는 얼어붙은 옷을 세워놓는 ‘프리즈 패션’, 한 번에 얼어버리는 끓는 물 퍼뜨리기 등 이 지역의 자연을 체험하는 행사가 열린다. 주민들은 이를 두려움과 자랑 사이 어딘가로 받아들인다. 추위와의 공존은 생존이라기보다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사하인의 전통 영토 중 하나로, 순록·말·야키트 소를 기르는 생활 방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오이먀콘이라는 지명도 ‘얼지 않는 물’을 뜻한다. 혹독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물이 있어 이 지역에 사람이 정착할 수 있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바로 그 샘이 인간을 이 가장 혹독한 땅에 붙잡아 놓았다.
온도계가 얼어붙을 만큼 낮아져 기록조차 불가능했던 날들, 그리고 흰 입김이 대지를 뒤덮는 새벽의 정적은 오이먀콘을 하나의 기념비처럼 만든다. 여기서 추위는 기상 현상이 아니라 주변 지형·문화·삶 전체를 규정하는 조건이다. ‘영하 60도의 마을’이라는 문장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이곳을 둘러싼 인간의 경험 전체를 압축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얼어붙은 시간, 그리고 인간의 자리
오이먀콘의 밤은 길고 만년설처럼 고요하다. 바람이 멈추면 마을 전체가 동화 속 작은 모형처럼 보인다. 굴뚝에서 피어오른 김은 허공에서 흐르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어 내려앉고, 멀리 순록의 발소리만 눈 위에 작은 홈을 남긴다. 인간은 이 혹한 속에서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내는 행위가 곧 자연을 존중하는 방식이 된다.
세계의 많은 여행자가 이곳을 ‘극한 체험의 목적지’로 상상하지만, 오이먀콘은 여행지를 넘어서 하나의 경계처럼 존재한다. 기온계를 내려놓고, 카메라를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면 알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추위의 심장 같은 이 마을은 그 단순한 진실을 누구보다 강렬하게 보여준다.
오이먀콘은 오늘도 영하의 세상 아래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멈춘 듯 흐르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하지만 분명히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