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세상에는 닭, 소, 돼지를 넘어선 야생의 선택지가 존재한다. 바로 공룡의 후예라 불리는 악어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노던준주에서는 악어가 특별한 존재다. 한때 멸종 위기까지 갔던 이들을 보호하며 수를 회복시키자, 오히려 악어가 사람을 위협하는 상황이 늘어났다. 그 결과 나타난 현실적인 해법은? 바로 먹자였다. 가까운 진화론의 기억을 품은 육질, 닭과 물고기의 사이, 이 둘도 아닌 어딘가. 한입 베어 문 순간, 여행자는 문득 생각한다. ‘내가 지금, 공룡을 굽고 있다?’ 원시의 맛을 오늘의 테이블 위로 옮겨온 오스트레일리아. 야생과 식탁의 간극은 생각보다 얇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악어의 왕국이라 불린다. 특히 노던준주에서는 염수악어(Saltwater Crocodile)가 인구보다 많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총 길이 5m 이상의 초대형 포식자. 원주민 아버지의 꿈속에 나타나는 주술적 존재이자, 밤이면 강둑을 지배하는 무서운 이웃. 그러나 도시가 강을 침범한 건 인간이고, 결국 공존의 과정에서 악어산이라는 독특한 해법이 등장했다. 지금의 악어 스테이크는 이 산업의 부산물이자,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정면으로 자극하는 대표 별미다. 악어는 관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지중해의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섬 사르데냐. 푸른 바다와 돌담, 그리고 양들이 평원을 하얗게 물들이는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치즈가 있다. 바로 ‘카수 마르주(Casu Marzu)’. 직역하면 ‘썩은 치즈’. 그런데 이 치즈는 단순히 오래됐다는 수준이 아니다. 치즈 속에서 꿈틀대는 생명체, 바로 살아있는 구더기가 주인공이다. 유럽연합(EU)이 한때 판매를 금지할 정도의 위력. 여행자가 이 치즈를 마주하는 순간, 식탁은 호기심과 공포가 뒤섞인 작은 모험의 현장이 된다.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혀가 아닌 용기로 맛보는 한입, 이 섬의 오랜 풍습과 절실한 생존의 역사가 그 안에 녹아 있다. 카수 마르주의 출발은 생존의 지혜였다. 옛 사르데냐 사람들은 냉장고도, 현대적인 식품 보존 기술도 없었다. 양젖 치즈 ‘페코리노’를 저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파리류가 알을 낳았고, 그 유충이 치즈 안을 파고들며 발효가 가속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치즈는 더 부드러워지고 향은 더 강렬해졌다. 문제는 그 향의 방향이 ‘고소함’을 지나 ‘암모니아 풍’으로 돌진한다는 것. 치즈를 자르면 눈앞에서 미세한 생명체들이 팔딱거리며 점프할 때도 있어, 먹다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고요한 초원의 아침, 검은 소 떼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고, 칼렌진족 청년들은 날렵한 몸으로 목초지 위를 달린다. 그들의 생활은 늘 소와 함께이고, 영양 또한 소에서 나온다. 케냐의 전통 발효 음료 ‘무르식(Mursik)’은 그 독특한 증거다. 우유에 숯가루를 섞고, 필요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소의 피를 소량 섞어 만든다. 여행자 입맛에는 도전적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이어진 건강음료. 이 한 잔에 유목의 생존 철학과 ‘달리는 민족’이 탄생한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과연, 피로 만들어진 이 우유 한 모금을 마실 용기가 있을까. 케냐 서부의 리프트밸리(Rift Valley)는 세계 장거리 육상 영웅들이 태어난 땅이다. 케냐의 칼렌진(Kalenjin)족, 특히 난디(Nandi) 사람들은 매년 올림픽과 세계 대회에서 금빛 트랙을 점령해왔다. 이 지역의 청년들이 어떻게 그토록 강인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많은 이들은 전통 발효 음료 무르식(Mursik)을 언급한다. 무르식은 기본적으로 소의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다. 그러나 그 시작은 단순한 발효 우유가 아니다. 칼렌진족의 문화에서 소는 재산이고 생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우리는 여행에서 ‘현지의 특이한 음식’을 찾을 때, 종종 호기심과 재미를 앞세운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는 먹는다는 행위가 곧 생존의 최소 조건이 되는 곳이 있다. 카리브해의 낙원이라 불리는 아이티. 아름다운 리조트 사진 뒤에는, 극심한 빈곤에 맞서야 하는 사람들의 현실이 숨어 있다. 그들이 선택한 마지막 음식. 그것은 배고픔을 잠시 속이기 위한 진흙 한입이다. 이름은 머드쿠키(Mud Cookies) 혹은 현지어로 ‘Bonbon Tè’. 구멍 난 위장을 달래기 위해 만든, 영양 없는 쿠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간식은 이렇게 태어났다. 한입도 쉽지 않은 도전 음식이 아니라, 한입이라도 있어야 하는 절박한 음식. 여행자가 호기심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티 머드쿠키는 고운 카올린 점토, 식용유, 소금, 물을 섞어 햇볕 아래 바짝 말려 만든다.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만 보면 쿠키, 혹은 빵처럼 보인다. 색깔은 흙빛이지만 표면이 매끈해 얼핏 건강식 과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입에 넣는 순간 이 음식이 가진 목적이 전혀 다름을 깨닫는다. 고소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들고, 들큰하면서도 모래알 씹히듯 입안이 거칠어진다. 영양가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세상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방식으로 숙성되는 음식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그린란드 이누이트가 만드는 발효 요리 ‘키비악(Kiviak)’은 극지 생존음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먹는 순간까지,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하는 음식. 바다표범의 가죽을 벗겨내 속을 비우고, 그 안에 수백 마리의 작은 바다새(주로 오크, Auk)를 통째로 넣는다. 깃털, 내장 그대로. 그리고 가죽을 다시 꿰매 바다표범의 기름으로 봉한 뒤, 빙설 아래 파묻어 수개월에서 길게는 반년 이상을 발효시킨다. 비교적 따뜻한 여름에도 곰이나 개가 파헤치지 않도록 큰 돌을 눌러 덮는다. 이를 꺼내는 시점은 겨울. 조상들이 북극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비축 식량. 그러니 냄새와 비주얼에 놀라기 전에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생존의 역사다. 이누이트에게 사냥은 단순히 먹을 것을 얻는 행위가 아니다.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의식이자, 계절과 생태를 읽는 기술이다. 키비악이 탄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한의 겨울, 바다사냥이 수주간 막혀 고기 한 점 구하기 어려울 때. 여름에 잡아 놓은 바다새 떼가 가죽 속에서 익어가며 귀중한 지방과 단백질을 선물한다. 북극 특유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아프리카 동남부 말라위. 곡창지대가 펼쳐진 평원에 해가 질 무렵, 아이들은 들판으로 달려 나가 작은 생명체를 쫓는다. 포획 도구는 화려하지 않다. 플라스틱 병이나 간단한 덫이면 충분하다. 목표는? 흔한 스낵이자 귀한 단백질, 바로 생쥐다. 다 잡으면 꼬챙이에 꿰어 통째로 구운 뒤 시장에 내놓는다. 깔끔한 도시 여행자에게는 충격 그 자체. 그러나 말라위 사람들에겐 사바나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이자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익숙함과 혐오감이 공존하는 음식, 생쥐 꼬치는 오늘도 누군가의 저녁 밥상을 지킨다. 생쥐 꼬치(Mouse Skewers)는 말라위를 비롯해 잠비아, 짐바브웨 등 남부 아프리카에서 흔히 발견되는 거리 음식이다. 주 재료는 ‘필드 마우스’라고 불리는 들쥐. 농경지 주변에서 곡물을 파먹으며 번식하기 때문에, 잡아먹는 일은 식량 보호이자 일종의 해충 방제 역할도 한다. 비유하자면, 농작물의 천적을 직접 식탁에 올리는 ‘순환식 미식’인 셈이다. 잡는 시기는 대체로 수확기와 맞물린다. 곡식 곳간을 노리는 들쥐가 가장 활발한 때, 아이들과 어른들은 함께 사냥을 나선다. 말라위의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불을 피워 들판을 태워가며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탄자니아의 시장에 가면 반짝이는 금빛 스낵 대신, 통통하고 하얀…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곤충이라기엔 크고, 고기라기엔 모양이 생소한 이 음식은 바로 ‘자자(Zaza)’라 불리는 대형 유충 요리다. 처음 보는 사람은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한 비주얼. 하지만 사바나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에겐 이만큼 든든한 단백질이 없다. 고단백, 친환경,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 불에 구워 바삭하게 만들면 고소함이 입안을 채운다. 음식은 때로 편견을 깨는 모험이 된다. 탄자니아 자자는 그 사실을 강렬하게 증명하는 한 입이다. 자자는 주로 ‘곤도(Gondo)’ 또는 ‘곰부(Gombu)’라 불리는 큰 비단벌레 유충을 말한다. 탄자니아 중부와 서부의 열대 숲, 그리고 이웃국인 잠비아 및 콩고민주공화국까지 사는 이 유충은 비가 많이 오는 시기이면 나무껍질 속을 가득 채운다. 과거 부족 사회에서 고기 공급이 일정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왔다. 현지 사람들이 자자를 채취하는 과정은 제법 모험적이다. 나무를 쪼개며 숲 속 깊숙이 들어가거나,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가 유충이 모여 있는 부분을 찾아낸다. 크고 통통한 모습은 처음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콜롬비아의 길거리 노점 한켠, 종이 봉지 안에서 바삭한 무언가가 달그락대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가까이 다가서면, 생각보다 작지 않은 검붉은 벌레들이 튀겨져 반짝인다. 이름은 호르미가 쿨로나스(Hormiga Culona). 직역하면 ‘엉덩이가 큰 개미’. 수백 년 전부터 산탄데르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어온 전통 스낵이다. 보기와 다르게 버터 팝콘 같은 향, 고소함의 여운이 퍼지는 맛. 처음엔 용기가 필요하지만, 한 번 먹어보면 은근히 손이 간다는 중독적 매력까지 갖췄다. 숲에서 나는 자연 단백질이자, 축제의 날에 빠질 수 없는 콜롬비아식 건배의 동반자. 미식의 경계는 언제나 우리가 세운 편견이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호르미가 쿨로나스의 주인공은 여왕개미다. 정확히 말하면 수컷 개미와 함께 번식을 담당하는 ‘날개 달린 여왕개미,’ 그중에서도 산란철에만 잡히는 귀한 존재다. 이 지역에서는 우기(4~6월)가 제철. 비가 오면 개미들이 땅속에서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데, 이때 주민들은 기다렸다는 듯 전통방식으로 잡는다. 큰 바구니를 들고 땅을 두드리며 여왕개미 떼를 모아 채집한다. 자연이 내어주는 단백질을 활용하는 지혜가 담긴 풍경이다.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누가 거미를 먹는다고?” 질문은 쉽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시장에 가면 답은 눈앞에 있다. 뜨겁게 달군 기름 속에서 바삭하게 튀겨져 금빛으로 빛나는 타란툴라. 관광객들은 도전과 인증을 위해, 현지인들은 일상의 단백질을 위해 가볍게 집어 든다. 처음엔 다리부터, 그리고 망설임 끝에 몸통까지. 바삭함과 고소함이 뒤섞인 그 맛에는 생존의 역사와 전쟁의 상처가 깃들어 있다. 끔찍함과 호기심 사이, ‘한 입의 모험’이 되는 순간. 캄보디아 타란툴라 튀김은 두려움을 이긴 자만이 알 수 있는 풍미를 선사한다. 타란툴라를 먹는 문화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1970년대 캄보디아 내전과 크메르 루즈 정권 시기, 극심한 식량 부족 속에서 사람들이 숲과 들에서 단백질원을 찾아 헤맨 것이 시작이었다. 버려진 관념의 틈에서 발견된 건, 무시무시한 외형 뒤에 숨겨진 영양이었다. 타란툴라는 사실 매우 영양가가 높은 식재료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은 적으며, 필수 아미노산과 미량 영양소도 포함한다. 캄보디아 북서부 스콩(Skuon)은 이 음식의 본고장으로 불린다. 거리 노점마다 크고 털북숭이한 거미가 산처럼 쌓여 있고, 튀겨지는 순간 특유의 고소한 향이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그리스의 어느 골목 식당에 들어서면, 따끈하게 김이 솟는 오븐 앞에서 셰프가 큼지막한 틀에 칼을 넣는다. 바삭한 표면 아래로 고기와 파스타, 베샤멜 소스가 층층이 드러나는 순간, 테이블마다 기대 어린 시선이 쏠린다. 이 요리의 이름은 파스티치오(Pastitsio). 처음 먹어보는 사람에게는 라자냐 같기도 하고, 거대한 그라탕 같기도 하지만, 한입 베어 물면 확실히 다른 맛이 느껴진다. 그리스 특유의 계피 향이 고기의 풍미 속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제국이 남긴 음식의 기억을 되살린다. 전통과 식민, 지중해의 따스함이 골고루 녹아든 한 접시. 파스티치오는 그리스 가정의 평범한 일상 음식인 동시에, 역사가 차곡차곡 쌓인 미식의 시간 여행이다. 파스티치오를 이해하려면, 지중해 한가운데서 끊임없는 침입과 교류를 겪어온 그리스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이탈리아와 터키, 그리고 아랍 세계의 문화가 수백 년에 걸쳐 엮이면서, 그리스 식탁에도 다양한 요리가 흘러들어왔다. ‘파스티치오’라는 이름 자체가 이탈리아어 Pastizio에서 왔다. ‘혼합물’, 혹은 ‘뒤섞인 것’이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정형화된 요리가 아니라, 여러 기반 문화가 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