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편집국] 여행은 한때 자유의 다른 이름이었다. 국경을 넘는다는 행위는 휴식이자 배움이었고, 서로 다른 문화가 스치며 이해를 넓히는 통로였다. 그러나 세계 주요 관광지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규제들은 이 오래된 정의를 흔들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추진 중인 ‘외국인 관광객 은행 잔고 공개 요구’는 여행이 이제 자유가 아니라 ‘심사 대상’이 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발리 주정부의 고민은 현실적이다. 관광객 급증은 범죄, 무질서, 불법 체류와 노동, 지역 공동체와의 갈등을 동반해왔다. 실제로 발리에서는 매년 수백 명의 외국인이 각종 문제로 추방되고 있다. 주민들의 피로감이 누적된 상황에서 ‘아무나 오는 관광’을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해결책이 ‘돈’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발리 정부는 충분한 자금을 보유한 관광객만이 책임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행자의 태도, 법 준수 의식, 문화 존중 여부는 계좌 잔액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재정 능력은 체류 중 소비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뿐, 문제 행동을 사전에 걸러내는 기준으로는 허술하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관
[뉴스트래블=편집국] 패키지 여행이 약속하는 것은 풍경이 아니다. 일정표에 적힌 도시도 아니다. 여행자가 돈을 내고 위임하는 것은 단 하나, “끝까지 관리받을 권리”다. 그래서 패키지 여행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사고가 아니라, 관리가 멈추는 순간이다. 최근 미국 서부 패키지 여행을 둘러싼 논란은 한 사건의 진위를 넘어선 불안을 드러냈다. 온라인에 공개된 주장들은 아직 공식 확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단순하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현실감 때문이다. 패키지 여행의 구조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패키지 여행은 집단 이동을 전제로 작동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동선, 정해진 판단. 그 흐름에서 벗어나는 순간 개인은 급격히 취약해진다. 언어는 통하지 않고, 교통은 낯설며, 선택권은 이미 인솔 시스템에 맡긴 상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융통성이 아니라 책임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종종 ‘일정 유지’가 ‘사람 보호’보다 앞선다. 문제는 특정 가이드의 판단이나 개별 회사의 태도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누가 최종 책임자인지, 어디까지가 본사의 책임인지, 현지에서 발생한 공백을 어떻게 메우는지에 대한
[뉴스트래블=편집국] 이 연재는 여행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우리는 ‘떠나자’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감히 목적지라 부르기 어려운 곳들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발을 딛는 순간 위험해지는 땅, 접근 자체가 거부되는 바다,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침묵해야 하는 장소들. 지도 위에 존재하지만, 여행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간들이다. 한국편에서 우리는 기억과 붕괴를 보았다. 사람이 떠난 마을, 사라진 모래사장, 시간이 멈춘 공간들. 그곳들은 모두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지만, 더 이상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금단이란 멀리 있어서가 아니라, 알고도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다는 사실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해외편으로 넘어가며 금단의 성격은 바뀌었다.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물리적 한계였고, 윤리였으며, 생존이었다. 사막은 인간의 몸을 거부했고, 섬은 외부 접촉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지하는 인간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졌고, 심해는 인간의 기술마저 시험했다. 이곳들에서 여행은 선택이 아니라 도전이었고, 종종 무모함에 가까운 시도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장 위험한 장소일수록 인간의 흔적은 가장 깊이 남아 있었다. 마리아나 해구의 바닥에는
[뉴스트래블=편집국] 지구 곳곳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도, 이곳만큼은 감히 ‘목적지’라 부르기 어렵다. 태평양의 심해에 길게 패인 상처, 인간 문명이 끝나는 지점의 문턱. 마리아나 해구는 지도에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이름만 남은 금단의 장소다. 아무리 위험한 여행지라도 ‘발을 딛을 수 있는 땅’이 존재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마리아나 해구는 존재 자체가 인간 접근을 거부하는 공간이다. 수심 1만m의 압력, 인간을 산산조각 낼 깊이지구에서 가장 깊은 지점으로 알려진 ‘챌린저 딥(Challenger Deep)’은 수심 약 10,920m. 이 깊이에서 가해지는 압력은 1㎡당 약 1,100톤에 달한다. 강철 선체는 찌그러지고, 인간의 신체는 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 체온은 유지되지 않으며, 호흡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여행의 조건은 단 하나다. “생존이 가능한가.”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부정이다. 마리아나 해구는 인간의 용기나 기술로 극복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 심연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된 자연의 규칙으로 작동하며, 그 규칙은 타협하지 않는다. 달 표면보다 덜 탐사된 곳인류는 달에 여섯 차례 착륙했다. 그러나 챌린
[뉴스트래블=편집국] 만족도 4점대.숫자만 보면 성공이다. 웰니스 관광은 잘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질문은 조금 더 깊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은 과연 충분한 성과일까. 만족도는 결과다. 그러나 관광의 본질은 과정에 있다. 누가 접근할 수 있었는지, 누가 배제됐는지, 어떤 경험이 반복 가능했는지는 숫자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웰니스 관광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재 웰니스 관광은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여행’에는 가까워졌지만, ‘모두를 위한 관광’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 비용, 접근성, 정보의 비대칭은 여전히 장벽으로 남아 있다. 만족한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애초에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또 하나의 질문도 필요하다. 웰니스 관광은 회복을 말하지만, 과연 지속 가능한 회복인가. 일회성 힐링에 머문다면 그것은 소비된 치유에 불과하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삶의 리듬에 영향을 남길 수 있을 때, 웰니스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만족도 조사는 웰니스 관광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묻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점수를 올리는 일이 아니라, 방향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더 많은 시설이 아니라, 더
[뉴스트래블=편집국] 1883년 8월,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에 있던 섬 하나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섬의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크라카타우(Krakatau). 당시 이 섬은 사람이 살던 곳은 아니었지만, 주변 해안에는 수십 개의 항구와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중 상당수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크라카타우의 분화는 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화산 폭발 중 하나로 기록된다. 폭발음은 4800km 떨어진 인도양 건너편에서도 들렸고, 화산재는 성층권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화산 그 자체가 아니라, 섬이 붕괴되며 발생한 연쇄적 파괴였다. 섬이 무너질 때, 바다가 움직였다1883년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대폭발은 크라카타우 화산체의 약 3분의 2를 붕괴시켰다. 그 결과 바다로 떨어진 거대한 암반과 화산 물질은 즉각적인 해저 변위를 일으켰고, 이는 초대형 쓰나미로 이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최대 40미터에 달하는 파도가 자바와 수마트라 해안을 덮쳤다. 항구는 사라졌고, 해안 마을은 흔적 없이 쓸려갔다. 당시 사망자는 약 3만 6천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화산이 아닌, 바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 파괴는 선택적이지 않았다.
[뉴스트래블=편집국] 황허(黃河)는 중국 문명의 젖줄로 불려왔다. 수천 년 동안 이 강은 농경지를 적시고, 도시를 키웠으며, 왕조의 흥망을 실어 나르는 통로였다. 그러나 그 강이 방향을 바꾸거나, 흐름을 멈추는 순간, 사람의 삶은 즉각적으로 균열을 드러냈다. 중국 북부와 서북부 곳곳에 흩어진 ‘황허 유령마을’은 그 결과물이다. 이 마을들은 지도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행정구역상 존재하지만, 실제 거주자는 거의 없다. 건물은 남아 있고, 도로도 이어져 있으나 생활의 소리는 사라졌다. 강이 더 이상 닿지 않는 순간, 마을은 기능을 잃었다. 통제된 강, 무너진 생활권황허 유역의 변화는 단기간의 자연재해가 아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대규모 치수 사업, 댐 건설, 관개 수로 확장, 산업용수 우선 배분이 누적된 결과다. 상류에서 물을 붙잡자 하류는 점점 말라갔다. 일부 구간에서는 강바닥이 드러났고, 지류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이 변화는 곧바로 농업 생산성 저하로 이어졌다. 우물은 깊어졌고, 토양 염분 농도는 높아졌다. 작물이 자라지 않자 사람들은 떠났다. 이주 정책이 시행된 지역도 있었고, 아무런 안내 없이 마을이 비워진 곳도 있다. 남은 것은 텅 빈
[뉴스트래블=편집국] 루트 사막(Dasht-e Lut)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머무르지 못하는 지표다. 이란 남동부에 펼쳐진 이 사막은 지리적으로 특별하지 않아 보인다. 바다도 없고, 산맥의 끝자락도 아니다. 그러나 위성 관측 자료가 이 지역을 지속적으로 지목해왔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지표면 온도가 기록된 장소. 생명 활동이 통계적으로 소멸하는 구간이다. 2005년부터 NASA의 위성 열 관측 결과, 루트 사막 일부 지역의 지표면 온도는 섭씨 70도를 넘어섰다. 이는 인간의 체온이 아니라, 지면 자체가 도달한 수치다. 공기보다 땅이 먼저 한계에 도달하는 공간. 이곳에서 태양은 빛이 아니라 압력에 가깝다. 지형이 만든 무인 지대루트 사막의 핵심은 ‘칼루트(Kalut)’라 불리는 지형이다. 수십 km에 걸쳐 이어지는 이 침식 지형은 바람과 열이 만든 결과물이다. 마치 건물이 무너진 도시처럼 보이는 이 구조물은 물의 흔적이 거의 없다. 바람은 모래를 옮기지 않고, 바위를 깎는다. 그 결과 생성된 협곡과 능선은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반복된다. 이곳에서는 방향 감각이 무의미해진다. 지표의 형태가 유사하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뉴스트래블=편집국] 멕시코 중부 고원지대에 자리한 돌로레스 이달고(Dolores Hidalgo)는 독립전쟁의 발상지로 알려진 도시다. 관광 안내서에는 혁명의 깃발과 성당, 도자기 공방이 먼저 등장한다. 그러나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에는 지도에 작게 표시된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돌로레스 묘지. 이곳은 단순한 매장지가 아니라, 도시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소다. 묘지의 입구는 평범하다. 담장은 낮고, 출입을 막는 철문도 없다. 대신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묘지의 풍경’은 빠르게 해체된다. 땅속에 묻힌 무덤보다 지상에 쌓아 올린 구조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벽면처럼 이어진 납골 구조물, 색이 바랜 가족 묘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남겨진 생활의 흔적들이 이곳을 하나의 ‘거주 공간’처럼 보이게 만든다. 죽음이 밀려난 적 없는 도시멕시코의 묘지는 죽음을 숨기지 않는다. 특히 돌로레스 묘지는 ‘죽은 자를 외곽으로 밀어낸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시간 속에 계속 남겨진 장소다. 이곳에서는 무덤 위에 음식을 올리고, 생전 즐기던 술병이나 장난감이 그대로 놓인다. 사망일은 기일이 아니라 또 하나의 기념일처럼 반복된다. 이런 풍경은 멕시코의
[뉴스트래블=편집국] 러시아 북서부, 북극권 가까이 위치한 콜라 반도에는 지도에도 잘 표시되지 않는 장소가 하나 있다. 관광객을 부르는 표지판도, 기념관도 없다. 대신 녹슨 금속과 부서진 목재 사이, 물이 고인 땅 위에 작은 원형 철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위에 분필처럼 남겨진 숫자. 12,226m. 이 숫자는 한때 인류가 땅속으로 내려간 가장 깊은 거리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장소가 멈춰버린 시간의 깊이이기도 하다. 땅을 향한 냉전의 경쟁콜라 초심도 시추공(SG-3)은 1970년, 소련이 시작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목표는 단순했다. 지각을 가능한 한 깊이까지 뚫어, 지구 내부의 구조를 직접 확인하는 것. 과학의 이름을 달았지만, 냉전의 그늘 아래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심해 시추 경쟁에 대한 조용한 응답이기도 했다. 시추는 느렸고 집요했다. 매년 수백 미터를 내려가며 장비는 계속 교체됐고, 예상과 다른 지질 구조가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지하 7km 이후부터는 온도와 압력이 기존 계산을 벗어났고, 드릴은 자주 파손됐다. 그럼에도 시추는 멈추지 않았다. 12,226m라는 숫자가 남은 이유1984년, 시추 깊이는 12,226m에 도달했다. 당시로서는 세계 최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