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고요한 초원의 아침, 검은 소 떼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고, 칼렌진족 청년들은 날렵한 몸으로 목초지 위를 달린다. 그들의 생활은 늘 소와 함께이고, 영양 또한 소에서 나온다. 케냐의 전통 발효 음료 ‘무르식(Mursik)’은 그 독특한 증거다. 우유에 숯가루를 섞고, 필요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소의 피를 소량 섞어 만든다. 여행자 입맛에는 도전적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이어진 건강음료. 이 한 잔에 유목의 생존 철학과 ‘달리는 민족’이 탄생한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과연, 피로 만들어진 이 우유 한 모금을 마실 용기가 있을까. 케냐 서부의 리프트밸리(Rift Valley)는 세계 장거리 육상 영웅들이 태어난 땅이다. 케냐의 칼렌진(Kalenjin)족, 특히 난디(Nandi) 사람들은 매년 올림픽과 세계 대회에서 금빛 트랙을 점령해왔다. 이 지역의 청년들이 어떻게 그토록 강인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많은 이들은 전통 발효 음료 무르식(Mursik)을 언급한다. 무르식은 기본적으로 소의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다. 그러나 그 시작은 단순한 발효 우유가 아니다. 칼렌진족의 문화에서 소는 재산이고 생
[뉴스트래블=편집국]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 지금은 차가운 바다만이 출렁이는 베링해협 아래에는 과거 인류의 길이 숨 쉬고 있다. 마지막 빙하기, 바다가 물러난 자리엔 대륙과 대륙이 이어진 거대한 육지 - 베링기아(Beringia)가 있었다. 지금은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라진 대륙의 길’. 그 흔적을 따라 들어가면, 인류가 처음으로 대륙을 건너던 시간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얼음과 침묵 위에 남은 길의 흔적베링해협에 서 있으면 가장 먼저 들리는 것은 파도 소리보다 바람이다. 이곳은 바람이 지형을 기억하는 드문 장소다. 바람이 먼 해역에서 불어올 때마다, 그 아래 가라앉은 옛 육지의 형태가 희미하게 떠올라온다. 지금은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 80km의 바다지만, 불과 수만 년 전,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평원이었다. 마지막 빙하기가 해수면을 120m 이상 끌어내린 덕에 드러난 땅. 그 길이 바로 베링 육교다. 위성 해저 지형 자료에서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강줄기가 구불구불 흐르다 갑자기 끊긴 곳, 과거 빙하가 자리를 비우며 만들어낸 완만한 계곡, 순록과 들소가 이동하던 툰드라의 자락. 과학자들은 이 지형을 따라 “여기엔 분명 길이 있었다”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여행은 소비의 집합체다. 숙박과 항공, 교통, 음식, 쇼핑이 모여 산업을 이루고, 그 선택의 결과가 지역 경제를 움직인다. 그런데 지금 여행객의 소비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건보다 경험, 소유보다 순간을 선택하는 가치관의 전환이 전 세계 관광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여행 소비의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여행 지출 중 체험 관련 항목 비중은 팬데믹 이전보다 평균 15~20% 증가했다. 반대로 전통적 쇼핑 지출은 정체 또는 감소세를 보인다. 관광의 핵심 상품이 기념품에서 체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MZ세대와 알파세대가 소비 주체로 부상하면서 변화는 더 가속화된다. Z세대의 65% 이상이 여행 선택 기준 중 1순위로 ‘특별한 경험’을 꼽았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음식 문화 탐방, 지역 삶을 경험하는 체류형 여행, 자연 속 여행 프로그램이 주목받는 이유다. 플랫폼 산업은 이 흐름을 즉각적으로 반영했다. 항공권과 숙박 예약 중심이던 글로벌 OTA(온라인 여행 플랫폼)는 활동 예약 카테고리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트립어드바이저의 자회사 비아토르는 팬데믹 이후 투어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우리는 여행에서 ‘현지의 특이한 음식’을 찾을 때, 종종 호기심과 재미를 앞세운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는 먹는다는 행위가 곧 생존의 최소 조건이 되는 곳이 있다. 카리브해의 낙원이라 불리는 아이티. 아름다운 리조트 사진 뒤에는, 극심한 빈곤에 맞서야 하는 사람들의 현실이 숨어 있다. 그들이 선택한 마지막 음식. 그것은 배고픔을 잠시 속이기 위한 진흙 한입이다. 이름은 머드쿠키(Mud Cookies) 혹은 현지어로 ‘Bonbon Tè’. 구멍 난 위장을 달래기 위해 만든, 영양 없는 쿠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간식은 이렇게 태어났다. 한입도 쉽지 않은 도전 음식이 아니라, 한입이라도 있어야 하는 절박한 음식. 여행자가 호기심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티 머드쿠키는 고운 카올린 점토, 식용유, 소금, 물을 섞어 햇볕 아래 바짝 말려 만든다.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만 보면 쿠키, 혹은 빵처럼 보인다. 색깔은 흙빛이지만 표면이 매끈해 얼핏 건강식 과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입에 넣는 순간 이 음식이 가진 목적이 전혀 다름을 깨닫는다. 고소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들고, 들큰하면서도 모래알 씹히듯 입안이 거칠어진다. 영양가
[뉴스트래블=편집국] 안다만해의 잔잔한 바다 위, 녹색으로만 보이는 작은 섬 하나가 지도에서 거의 흔적처럼 놓여 있다. 북센티널. 이곳은 위성사진으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세계 최후의 고립사회이자, 외부인의 발을 허락하지 않는 절대 금지 구역이다. 해안선은 언제나 고요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이한 긴장감이 공기를 가른다. 나무 사이의 그림자처럼 존재만 전해질 뿐, 그들의 언어도, 숫자도, 역사의 기록도 바깥세계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요하지만 닿을 수 없는 해안선북센티널 섬은 인도령 안다만 제도에 속해 있지만, 행정의 손길은 해안선에서 멈춘다. 바다 위에서 바라보면, 이 섬은 그저 빽빽한 열대림이 해변까지 내려온 평범한 무인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 단단한 침묵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무의 그림자 사이로 인간의 기척이 스치지만, 그 존재는 결코 ‘보여지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섬은 수만 년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고립된 문화를 이루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위성 사진에서조차 내부는 거의 식별되지 않으며, 해변에 떠밀려온 배의 잔해만이 이 섬이 단지 자연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동체의 영토’임을 암시한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세계 여행의 흐름은 단지 여행객의 취향 변화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든 빨리, 싸게, 편하게 갈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이동성의 변화가 관광 지형을 바꾸는 핵심 동력이다. 항공망의 확장, 디지털 비자의 확산, 새로운 경유 허브의 부상은 여행의 방향을 다시 그리게 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국제선 운항은 빠르게 회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글로벌 항공망의 위상과 힘의 균형은 이전과 달라졌다. 유럽의 일부 항공사는 공급 여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반면, 중동과 아시아의 대형 항공사들은 장거리 노선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중동의 두바이와 카타르 도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거대한 환승 허브로 확고히 자리 잡았고, 이스탄불도 공격적인 노선 확대 전략으로 새로운 연결 중심지로 부상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세계 최다 국제 환승 공항 상위 5곳 가운데 3곳이 중동에 위치한다. 이는 단순한 환승 지점의 확대를 넘어, 여행의 경로가 중동을 중심으로 재조정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과거 서유럽 항공사가 지배하던 이동 노선은 다극화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관광 소비가 발생하고 있다. 비자의 디지털화도 관광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세상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방식으로 숙성되는 음식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그린란드 이누이트가 만드는 발효 요리 ‘키비악(Kiviak)’은 극지 생존음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먹는 순간까지,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하는 음식. 바다표범의 가죽을 벗겨내 속을 비우고, 그 안에 수백 마리의 작은 바다새(주로 오크, Auk)를 통째로 넣는다. 깃털, 내장 그대로. 그리고 가죽을 다시 꿰매 바다표범의 기름으로 봉한 뒤, 빙설 아래 파묻어 수개월에서 길게는 반년 이상을 발효시킨다. 비교적 따뜻한 여름에도 곰이나 개가 파헤치지 않도록 큰 돌을 눌러 덮는다. 이를 꺼내는 시점은 겨울. 조상들이 북극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비축 식량. 그러니 냄새와 비주얼에 놀라기 전에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생존의 역사다. 이누이트에게 사냥은 단순히 먹을 것을 얻는 행위가 아니다.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의식이자, 계절과 생태를 읽는 기술이다. 키비악이 탄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한의 겨울, 바다사냥이 수주간 막혀 고기 한 점 구하기 어려울 때. 여름에 잡아 놓은 바다새 떼가 가죽 속에서 익어가며 귀중한 지방과 단백질을 선물한다. 북극 특유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지구촌 여행 지도가 바뀌고 있다. 더 많은 여행객이 열대의 바다로 향하지만, 정작 그 천국 같은 해변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해수면 상승과 해안 침식, 잦아진 폭풍은 관광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국가들의 기반을 직접적으로 흔들고 있다. 기후 위기는 단지 날씨 변화를 넘어, 관광 산업의 판도를 다시 짜고 있다. 몰디브는 그 대표적 사례다. 평균 고도 1.5미터에 불과한 이 나라는 바닷물이 밀려올 때마다 방파제를 높이고 모래를 인공적으로 채워 넣는다. 그러나 해수면 상승 속도는 이미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몰디브 정부는 2100년 전후 국가 소멸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했고, 일부 섬은 이미 관광객의 기억 속으로만 남았다. 천혜의 환경이 사라지는 속도는 통계보다 체감이 먼저 찾아온다. 태평양의 작은 도서국들도 같은 위기를 겪고 있다. 피지, 투발루, 키리바시 등은 전체 GDP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이 30~40%를 넘는다. 하지만 공항 활주로가 물에 잠기거나, 숙박시설 주변의 백사장이 침식되면 관광은 유지될 수 없다. 극한 기후로 항공편이 끊기는 날이 늘어나자, 여행사들은 일정 보장을 망설이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이곳에서 “관광 이
[뉴스트래블=편집국] 아라비아해 남쪽 끝, 대륙에서 수천만 년 동안 떨어져 나온 작은 섬 하나가 있다. 예멘 소코트라. 지구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구의 감각을 벗어난 이 섬은, 우산 모양의 드래곤블러드 트리(Dragon’s Blood Tree, 용혈수)가 붉은 수액을 숨기고 서 있고, 바람과 침묵이 묘하게 엇갈리는 외계의 장면을 조용히 펼쳐 보인다. 접근조차 어려운 고립의 땅이지만, 바로 그 고립 덕분에 지구가 오래전 잃어버린 풍경이 아직도 이곳에 남아 있다. 바람이 깎아 만든 외계의 산림아라비아해와 인도양이 만나는 길목, 그 바람의 경계면에 자리한 소코트라 섬은 지리적으로는 예멘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지구 어딘가와 단절된 또 하나의 대륙 같다. 수천만 년 동안 대륙과 분리된 채 독자적으로 남아 있던 이 섬은 ‘시간의 고립’이 만들어낸 생태의 박물관처럼 보인다. 섬에 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피의 드라세나’라 불리는 드래곤블러드 트리다. 우산처럼 벌어진 수관은 뜨거운 해풍을 맞으며 균열 없이 버티고 서 있고, 가까이 다가가면 나무껍질 틈으로 붉은 수액이 굳어 흘러내린 흔적이 보인다. 고대인들은 이를 약재로 사용했고, 중세의 항해자들은 이 낯선 붉은색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유럽 남부에서 여름이 점점 ‘지독하게 더워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관광객들의 여행지 선택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바다와 해변, 그리고 태양 아래의 휴양을 기대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기후 쾌적성’을 여행지 선택의 핵심 요소로 삼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후 변화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세계 관광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가 관광의 기초를 흔들다최근 들어 극심한 폭염, 해수면 상승, 극한 기후현상 등이 잦아지며 많은 전통 관광지가 위협받고 있다. 특히 여름철 ‘뜨거운 지중해’, ‘무더위의 휴양지’로 불리던 남유럽 해안과 해변 관광지는 기후 리스크에 더욱 취약하다. European Travel Commission (ETC) 보고서도, 폭염·가뭄·산불·홍수 등 기후 변화가 관광지로서의 매력과 안전성을 약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한편의 메타분석 연구 - 기후변화에 따른 국가별 관광수요 영향 메타분석 - 에 따르면, 기온 상승은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고위도 또는 중위도 국가, 즉 북유럽·북미·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에서는 관광수요가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이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