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하노이의 아침 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철판의 ‘탁탁’ 소리. 버터가 녹아내리는 향이 좁은 골목을 채운다. 반쯤 열린 포장마차 안, 바게트가 노릇하게 구워지며 빵 껍질이 살짝 갈라진다. 노점상 주인은 손끝으로 고수를 찢고, 단무지를 건져 올린다. 몇 초 사이에 만들어진 반미 하나가 종이봉투에 싸여 손님에게 건네진다. 그 짧은 순간, 베트남의 역사와 일상이 한입 크기로 포장된다. 반미는 단순한 샌드위치가 아니라, 한 나라의 근현대사를 압축한 ‘먹는 기억’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바게트는 지배의 상징이었다. 밀가루는 귀했고, 쌀이 주식인 베트남인에게 빵은 낯선 서양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쌀가루를 섞어 더 가볍고 바삭하게 굽고, 비싼 햄 대신 저렴한 돼지고기, 닭고기, 간 레버페이스트를 넣었다. 절인 무와 당근, 신선한 고수, 매운 칠리소스를 곁들이며 입맛에 맞게 변주했다. 그렇게 프랑스의 빵은 베트남의 거리에서 다시 태어났다. 오늘날 하노이와 호치민의 아침은 반미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포장마차마다 빵 굽는 냄새가 가득하고, 도시의 스쿠터 행렬은 반미를 한 손에 든 채 흐른다. 석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기온이 오르고, 비의 양이 달라지자 사람들의 여행지도도 변했다. 한국관광공사와 기상청의 데이터를 결합해 주요 관광지의 변화 양상을 분석한 결과, 폭염 시기에는 해안보다 실내 관광 수요가 늘고, 전통적인 여름 피서지의 체류 기간이 짧아지는 등 ‘기후 적응형 여행’이 뚜렷한 흐름으로 나타났다. 한국관광공사 관광데이터랩과 기상청 국가기후데이터센터 자료(2020~2024년)에 따르면, 평균기온 상승과 폭염일 증가가 두드러진 도심 지역에서는 여름철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해풍이 불거나 고지대에 위치한 지역은 같은 기간 방문 비율이 상승했다. 여름철 체류 행태 역시 짧은 일정, 실내 중심 여행으로 재편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공사 관계자는 “폭염과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계절별 여행 패턴이 바뀌고 있다”며 “봄·가을이 새로운 성수기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수단별 탄소배출량을 비교한 국토교통부 교통에너지데이터센터 통계에서는 단거리 항공편이 가장 높았고, 중형차·버스가 뒤를 이었다. 전기차와 기차는 1km당 배출량이 가장 낮았다. 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기차를 이용한 여행의 비중이 꾸준히 확대되며, 저탄소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외국인 관광객의 미식 동선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전주 한옥마을, 남산타워, 인사동 같은 전통 관광지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성수동, 가회동, 명동의 골목길과 동네 카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들이 찾는 목적지는 ‘명소’가 아니라 ‘일상’이다. 한국관광공사의 외국인 카드결제 데이터는 이런 흐름을 명확히 보여준다. 2025년 기준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소비한 업종은 편의점, 카페, 햄버거, 베이커리 순이었다. 그중에서도 로컬 카페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외국인의 로컬 카페 이용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1.5% 증가했고, 특히 대만(58.5%), 일본(30.0%), 중국(32.0%)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지역별로 보면, 성수동이 전체 외국인 카페 결제의 18.8%를 차지하며 단연 1위였다. 명동(11.2%), 서교동·압구정동(각 8.8%), 가회동(6.3%), 한남동(5.0%) 순으로 뒤를 이었다. 성수동은 한때 공장지대였지만, 카페와 베이커리, 디자인 편집숍이 들어서며 이제는 ‘로컬 감성의 성지’로 불린다.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의 도시 문화와 미식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 동네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의 핵심은 ‘일상
[뉴스트래블=편집국] 태백시 창죽동 깊은 숲 속, 해발 1420미터의 고지대에 물이 솟는다.이 물줄기는 굴착된 인공 통로가 아닌, 수천 년간 산이 품어온 맥락에서 터져 나온다. 사람들은 이곳을 검룡소라 부른다. 맑은 물은 작은 연못을 이룬 뒤 계곡을 타고 흘러, 훗날 한강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이 청정한 풍경은 오래전부터 ‘죽음의 땅’ 위에 서 있다. 태백은 대한민국 석탄 산업의 중심이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함태·통동·장성·철암 등지에서 검은 금, 석탄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광부 수는 수만 명. 지하 500미터로 내려간 그들의 땀과 피가 서울의 전등을 밝혔다. 하지만 1989년, 정부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내놓으며 모든 것이 뒤집혔다. 비용 절감, 효율 개선, 그리고 ‘청정에너지’ 전환이라는 명목 아래 태백의 광산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갱도는 물에 잠기고, 인부 숙소와 적재장은 버려졌다. 검은 먼지가 사라진 자리엔 침묵이 남았다. 산이 사람을 밀어내자, 물이 돌아왔다폐광의 상처는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복수를 시작했다. 채굴이 멈추자, 수로를 따라갔던 지하수가 다시 원래의 길을 찾았다. 그 첫 신호가 바로 검룡소였다. 지질학자들은
[뉴스트래블=차우선 기자] 안산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김홍도길은 조선 후기 풍속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의 예술적 뿌리를 찾아가는 역사 문화 길이다. 그는 30대 후반까지 안산에 거주하며 강세황으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이곳에서 서민들의 삶을 깊이 관찰하며 한국 미술사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김홍도의 유명한 풍속화 '씨름', '서당' 등의 배경이 혹시 안산의 마을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는 흥미로운 K-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단원이 남긴 그림과 기록 속에 250년 전 안산의 숨겨진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천재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예술 혼이 시작된 고향의 비화를 추적한다. ◇ 프롤로그: '단원'이라는 이름에 깃든 고향 안산의 비화 김홍도의 호(號)인 단원(檀園)은 안산의 옛 지명인 단원(檀園)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 문인화가였던 강세황이 안산 첨성리(현재의 사사동 일대)에 거주하며 김홍도를 가르쳤다. 김홍도는 소년 시절부터 강세황의 문하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꽃피웠고, 스승에게 받은 각별한 애정과 가르침에 보답하고자 안산의 옛 지명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이처럼 김홍도길은 천재 화가와 그의 스승의 '사제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멕시코의 아침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타말레 냄새로 시작된다. 옥수수잎에 싸인 뜨거운 반죽은 도시의 공기를 달콤하고 고소하게 적신다. 출근길 사람들은 한 손에 커피, 다른 손에는 타말레를 쥔 채 분주히 걸음을 옮긴다. 겉보기엔 단순한 옥수수 찜빵 같지만, 그 속에는 수천 년의 신앙과 제의, 그리고 일상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에서 길거리 간식으로 변모한 타말레는, 멕시코인의 삶 그 자체다. 한입 베어 물면 옥수수의 구수함과 매운 칠리의 향, 그리고 오랜 문화의 숨결이 함께 피어난다. 타말레(Tamale)의 기원은 멕시코 고대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즈텍과 마야인들에게 옥수수는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신이 만든 생명의 원료’였다. 전설에 따르면, 신 케찰코아틀이 진흙으로 만든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옥수수를 먹였다고 한다. 그래서 옥수수는 곧 인간의 몸이자 영혼이었다. 타말레는 이런 믿음에서 태어난 제사음식이었다. 전사들이 출정을 앞두고 먹었고, 신에게 감사의 의미로 바쳤다. 타말레의 기본은 ‘마사(Masa)’라 불리는 옥수수 반죽이다. 삶은 옥수수를 빻아 물과 섞고, ‘니스타말(nistamal)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관광의 중심이 바뀌고 있다. 과거 여행은 ‘보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느끼는 것’이 됐다. 세계 곳곳에서 감각을 자극하는 여행이 인기를 얻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미식은 새로운 문화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맛을 통해 한 나라의 정체성과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관광공사가 제시한 ‘K-테이스트케이션(K-TASTECATION)’ 은 단순한 관광정책이 아니라, 한국이 세계와 소통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음식은 이제 문화의 언어다한국 미식관광의 성장세는 이미 수치로 증명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자 중 열 명 중 여덟은 ‘음식 체험’을 필수 코스로 꼽았고, 그중 상당수가 “한국 음식을 통해 문화를 이해했다”고 답했다. 음식은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올릴 때, K-드라마의 장면만큼이나 ‘비빔밥 한 그릇’이나 ‘거리에서 먹던 떡볶이 한입’을 기억한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세계관광기구(UNWTO)는 미식관광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체험형 산업’으로 정의한다. 여행자가 지역에서 머물며 식사를 하고, 그 과정에서 문화와
[뉴스트래블=박주성 기자] 서울 성수동의 한 감자탕집 앞에는 요즘 주말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선다. 그중엔 대만과 홍콩에서 온 단체 여행객도, 일본에서 온 혼행족도 있다. 한때 ‘현지인 맛집’이었던 이곳이 외국인 필수 코스가 된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이 찾는 것은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한국인의 일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의 외국인 카드결제 데이터를 보면, 2025년 7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높은 성장률을 보인 메뉴는 국수·만두(55.2%↑), 감자탕(44.0%↑)이었다. 이들은 특별한 한식당보다는 ‘일상 속 식사’로 분류되지만, 외국인에게는 오히려 가장 한국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인에게 평범한 점심 한 끼가 외국인에게는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이유다. 특히 대만과 홍콩에서 감자탕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대만 관광객의 감자탕 소비는 전년 대비 159%, 홍콩은 119%나 늘었다. 대만은 단체 관광 비중이 40% 이상으로 높아, 여러 명이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대형 메뉴의 선호가 두드러진다. 뚝배기에 담긴 국물요리와 함께 나누는 식사는 ‘함께 먹는 문화’라는 한국의 정서를 직관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현지 음식에서는 쉽게
[뉴스트래블=편집국] 강화도의 바람은 유난히 느리다. 그 바람이 스쳐가는 오래된 교정 위엔, 시간의 먼지가 겹겹이 쌓여 있다. 벽에는 낡은 교훈 문구가 희미하게 남아 있고, 운동장은 잡초로 뒤덮였다. 철제 미끄럼틀은 녹슬어 내려앉았고, 창문 너머로는 오래전 떠난 아이들의 흔적만 남았다. 이곳은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 인천 강화군에는 현재 20곳이 넘는 폐교가 있다. 인구 감소와 도시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1990년대 이후로 교문이 굳게 닫힌 학교가 늘었다. 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강화 지역 초등학생 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학교는 사라졌고, 마을의 중심이던 공간은 이제 기억 속 풍경으로 남았다. 삼산면의 석모초등학교 삼산분교장은 2012년 마지막 학생이 졸업한 뒤 문을 닫았다. 그 후 10여 년, 교실 안엔 여전히 낡은 칠판과 의자가 남아 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해무가 분필 자국 위를 흘러내린다. 이곳은 잠시 체험학습장으로 활용됐지만, 방문객이 줄며 다시 폐쇄됐다. 이제 마을 주민들만 가끔 운동장을 지나칠 뿐이다. 교동도의 교동초등학교 대룡분교장은 폐교 이후 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쓰였다. 교실 벽엔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낙서가 아직
[뉴스트래블=정국환 기자] 남해의 마지막 파도가 잦아들던 오후, 바람은 잔잔했고 하늘은 유난히 투명했다. 그렇게 긴 여정이 끝났다. 그러나 그 끝은 곧 또 다른 길의 시작이었다. 여행은 멀리 가는 일이 아니라, 같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일이었다. 이 기획은 바로 그 시선을 좇았다. 한국의 도시와 닮은 해외의 도시를 마주하며, 우리는 ‘공간의 닮음’보다 ‘사람의 마음’을 발견했다. 제주에서 하와이를, 전주에서 교토를, 남해에서 넬슨을 바라보며 이어진 여정은 단순한 비교 여행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소 속에 흐르는 공통의 감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닮은 듯 다른, 도시의 리듬을 걷다각 도시에는 고유한 리듬이 있다. 제주의 바람은 하와이의 파도와 닮았고, 전주의 골목은 교토의 거리처럼 시간의 결을 품고 있었다. 강릉의 바다는 북유럽의 해안처럼 차분했으며, 안동의 고즈넉한 마을은 프랑스 남부의 시골과 같은 평온을 안겼다. 이 시리즈를 따라가다 보면, 도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길 위의 공기, 사람의 발자국,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 우리는 결국 도시를 걷는 동시에,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난다. 여행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