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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여행지–해외편⑩] 바다의 무덤…나미비아 스켈레톤 코스트

​​​​​​​안개와 난파선이 남긴 ‘세계에서 가장 황량한 해안선’

[뉴스트래블=편집국] 아침의 햇빛이 닿지 않는 해안이 있다. 바다와 사막이 맞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차가운 안개가 하늘을 가리고, 모래 위에는 오래전 바다가 삼켰다 밀어낸 난파선의 잔해가 뼈처럼 눕는다. 스켈레톤 코스트. 지도 속에서는 단순한 지명이지만, 실제 그곳에 선 사람들은 이 해안이 왜 ‘인간이 마지막까지 피해야 하는 장소’로 불려왔는지 금세 이해하게 된다.

 

 

뼈와 모래의 경계에서

스켈레톤 코스트는 나미비아 북서쪽, 대서양과 나미브 사막이 맞닿는 500km 길이의 해안선이다. 이름만 보면 누군가 과장해 붙인 별명 같지만, 이곳의 첫인상은 그보다 더욱 적막하다. 파도는 거칠지만 소리는 둔탁하고, 모래 언덕은 매번 모양을 바꾸며 바람에 갈린다. 해류와 사막의 기단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안개는 하루 종일 해안을 따라 흘러다닌다.

 

스켈레톤 코스트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 난파선이 하나둘 나타난다. 외판이 부식돼 바다색이 벗겨진 선체, 뒤집어진 철골, 침몰 직전의 마지막 순간이 고스란히 남은 조타실. 바다는 이 잔해들을 밀어 올리고, 사막은 그것을 모래 속에 가라앉힌다. 그 경계에서 풍경은 묘하게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난파선이 쌓여 만들어진 이름

이 해안은 오래전부터 선원들이 가장 두려워한 항로였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벵겔라 해류는 연중 안개를 만들어 시야를 닫아버리고, 얕은 해안에는 보이지 않는 모래톱이 이어져 있다. 파도는 후퇴하지 못한 배를 깊은 쪽으로 밀어주지 않고, 선체는 바닥에 걸린 채 좌초된다.

 

이곳에서 배가 난파되면, 살아남은 선원들은 또 다른 절망을 마주한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물 한 방울 없는 사막뿐이라는 사실이다. 일부는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 구조를 기다렸지만, 대부분은 사막이 아니라 고독과 탈수로 생을 마쳤다. 그래서 서구 탐험가들은 이 해안을 오래전부터 ‘해골 해안’이라 불러왔다.

 

현재 확인된 난파선만 100척이 넘고, 모래에 묻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잔해는 그보다 훨씬 많다고 알려져 있다. 스켈레톤 코스트라는 이름은 허구가 아니라, 기록과 목격담에 기반한 현실의 풍경이다.

 

생명이 버티고 있는 곳

이 황량한 해안선에서도 생명은 버틴다. 바다사자의 무리가 해류를 따라 이곳으로 올라오고, 해류가 밀어 올린 풍부한 플랑크톤 덕분에 물개 무리가 모래 위에 눕는다. 사막에서는 하이에나가 바닷가에 내려와 먹이를 찾고, 사막 여우가 안개 속을 가른다. 존재 자체가 기적 같은 생태계다.

 

하지만 그 생명들조차 인간의 시간표와는 조금 다른 호흡으로 움직인다. 안개가 짙어지면 물개들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다가 다시 모래 위에 멈춰 서고, 사막의 짐승들은 바람의 변화만 읽고 움직인다. 그 사이에서 사람의 발자국은 기묘한 이질감을 만들어낸다.

 

인간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

스켈레톤 코스트는 일부 구역만 일반인에게 개방돼 있다. 그마저도 허가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고, 깊은 북쪽으로 갈수록 완전 통제 구역이 된다. 나미비아 정부는 수십 년째 이 해안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장비 없이 개인이 들어갔다가 조난을 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사막과 바다 사이에는 길이 뚜렷하지 않고, GPS 신호가 불안정한 구간이 많다. 모래 바람은 몇 분 사이에 자동차의 트랙을 지워버리고,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도 파도와 침식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구조가 오기까지는 몇 시간, 때로는 하루 이상 걸린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국립공원 허가를 받은 가이드와 함께 이동하며, 식수, 연료, 구조를 위한 위성 통신 장비가 기본 장비다. 스켈레톤 코스트는 ‘여행’이라는 말보다 ‘진입’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왜 우리는 이 황량한 해안을 바라보는가

스켈레톤 코스트의 매력은 이 해안이 품고 있는 ‘침묵의 깊이’에 있다. 모래에 절반쯤 묻힌 난파선의 윤곽, 바람에 지워지는 발자국, 안개 속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해안의 곡선. 이 모든 장면은 인간이 이 땅에서 크게 흔적을 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해변을 따라 걸으면 어느 순간 과거나 현재가 구분되지 않는 기묘한 감각이 생긴다. 오래전 선원들이 보았던 바로 그 풍경이 지금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는 듯하지만, 풍경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황량한 해안을 금단의 여행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공포가 아니라 고요에 있다. 생명의 언어가 희미해진 땅에서, 우리는 오히려 자연의 원형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바다와 사막, 안개와 난파선이 만들어낸 이 묵직한 장면은 인간의 세계를 잠시 멀리 두고 바라보게 만든다. 그 침묵 속에서 스켈레톤 코스트는 묻는다.


사라져가는 풍경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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