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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 월드 스케치|시즌 2] 한 나라, 한 장면⑥ 아르헨티나 마요 광장

권력이 교체될 때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
광장이 곧 정치가 된 국가의 중심

[뉴스트래블=박민영 기자]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부에 서면 가장 먼저 넓은 빈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높은 빌딩이나 화려한 기념물보다 사람의 움직임이 먼저 보이는 장소다. 마요 광장은 단순한 도시 광장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정치의 무대다. 이 나라는 중요한 순간마다 거리로 나왔다.

 

독립 선언도, 쿠데타도, 군사독재 항의도, 월드컵 우승 축하도 모두 이곳에서 벌어졌다. 권력은 궁 안에 있었지만 정치는 늘 광장에서 시작됐다. 국가는 제도보다 군중의 표정을 통해 방향을 드러냈다. 그래서 마요 광장은 아르헨티나를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이 된다.

 

 

이 장소가 국가를 대표하는 이유

 

마요 광장은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 바로 앞에 위치한다. 권력과 시민이 가장 짧은 거리에서 마주 보는 구조다. 물리적 근접성은 곧 정치적 긴장으로 이어진다. 국가는 이 공간에서 늘 시험대에 오른다.

 

아르헨티나는 선거보다 집회로 기억되는 나라다. 중요한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시민이 이곳으로 몰려왔다. 광장은 여론의 압력을 가시화하는 장치가 됐다. 정치가 거리에서 확인되는 방식이다.

 

이곳은 축제와 분노가 같은 장소에서 교차한다. 환호와 항의가 같은 동선 위에서 반복된다. 기쁨과 저항이 구분되지 않는다. 국가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마요 광장은 상징을 넘어 기능이 된다. 단순한 기념 공간이 아니다. 실제로 정치가 작동하는 현장이다. 아르헨티나의 중심은 늘 이 자리였다.

 

이 장소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마요 광장은 식민지 시기 스페인 총독부 앞 공터에서 시작됐다. 행정과 군사 기능이 집중된 권력의 중심지였다. 도시는 이 광장을 기준으로 확장됐다. 국가 형성 이전부터 기준점 역할을 했다.

 

1810년 5월 혁명은 이곳에서 촉발됐다. 시민들은 총독부 앞에 모여 자치를 요구했다. 식민 권력은 군중 앞에서 흔들렸다. 독립의 출발점이 공간에 각인됐다.

 

이후 광장은 자연스럽게 정치 집회의 장소로 굳어졌다. 정부 건물과 성당, 관청이 주변에 모였다. 제도와 시민이 한곳에 겹쳤다. 구조 자체가 정치적이었다.

 

국가는 이 광장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비워둔 채 유지했다. 언제든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남겨뒀다. 비어 있음이 곧 기능이 됐다.

 

이 장소가 겪은 변화와 그 결과

 

20세기 들어 마요 광장은 격렬한 현대사를 통과했다. 쿠데타와 군사정권이 반복됐다. 탱크와 군인이 이 공간을 점령했다. 권력은 광장을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시민도 물러서지 않았다.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이 매주 이곳을 걸었다. 실종된 자식을 찾는 침묵 시위가 이어졌다. 광장은 저항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이 장면은 세계에 알려졌다. 독재의 폭력과 시민의 인내가 동시에 드러났다. 아르헨티나는 이 광장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게 됐다. 국가 이미지가 이곳에서 형성됐다.

 

그 결과 마요 광장은 단일한 의미로 고정되지 않았다. 권력의 장소이자 저항의 장소가 됐다. 통제와 자유가 충돌했다. 복합적 기억이 축적됐다.

 

 

오늘, 이 장소가 갖는 의미

 

오늘날에도 집회와 시위는 계속된다. 경제 위기나 정치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향한다. 광장은 여전히 발언대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의 체온이 유지된다.

 

관광객도 이 공간을 찾는다. 그러나 사진 촬영보다 분위기를 먼저 체감한다. 이곳은 과거를 전시하는 유적이 아니다. 현재가 작동하는 현장에 가깝다.

 

대통령궁 발코니는 여전히 상징적 무대다. 지도자는 그 위에서 국민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아래에서는 군중이 응답한다. 권력과 시민이 직접 연결된다.

 

그래서 마요 광장은 살아 있는 정치 공간이다. 완성된 기념물이 아니다. 계속 해석이 덧붙는다. 국가는 이곳에서 오늘을 다시 쓴다.

 

이 공간이 남긴 국가의 얼굴

 

마요 광장은 아르헨티나의 기질을 드러낸다. 조용히 기다리기보다 직접 거리로 나오는 선택이 반복됐다. 국가는 광장을 통해 수정되고 조정됐다. 시민이 정치의 주체로 남았다.

 

이 장소를 이해하면 아르헨티나가 보인다. 제도보다 참여, 안정보다 표현을 택한 역사다. 권력은 항상 시험받는다. 마요 광장은 그 얼굴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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